2009년 6월 28일 일요일

군대에 왔으면.

 맨처음에 왔을때 이 생각 저 생각했는데, 사회에서의 내 문제점을 고치고 내가 진일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었다.(물론 제일 많이 든 생각은 한학기만 미루면 어떻게 안되나..였지만.)

그 생각을 늘 가지고 살고 싶었지만, 사람 인생이라는게 늘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 법인지라, 늘 그렇게는 살지 못하는 중이다. 내 문제점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그게 손에 잡혀가는데 아직까지도 내 말투와 내 행동에서는 그걸 바꾸지 못하고 있다.

 

 사회에서나 여기서나 사람이 바뀌려고 하지 않는다면 바뀌지 않는다, 싶은게, 난 내 문제점을 알면서도 정작 내 문제점을 고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경청하는 자세, 자학하는 버릇, 세상 모든 문제와 불만과 짜증을 나 혼자 안고 가는것 같은 자세등. 나의 짐이 되는 것들이요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이다. 한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라면. 그런데 내가 지금의 내가 과연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하루하루 그저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넣지 않은채로 정신없이 날 몰아치고 있지는 않을까.

 

 휴가 나와서 그냥 놀 생각만 하는게 아니라 내 자신이 좀 더 나아질 생각을 해 봐야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으니까..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안녕하세요.

2월 23일 이후로 간만이군요.

 

저는 지금 창원의 모 부대에 있습니다.

(면회 오실분은 어딘지 여쭤봐 주신다면 그저 ㄳㄳ)

아직 배울것도 많고 뭐 이것저것 할 것도 많은지라 바빠서 블로그도 자주 들어가지 못하고 하다가

간만에 들어왔네요.

 

다들 잘 계신가요?

머릿속에 하고싶은말들은 오만가지지만 생각나는건 음악이랑 축구밖엔 없네요.

 

그저..

2009년 2월 24일 화요일

잠시 안녕-

머리 밀기전, 민 다음.(안구테러 ㅈㅅㅈㅅ)


 입대 60일 전부터 잘 꾸며봐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블로그에 이 글 저 글 써왔다. 때로는 못 볼글, 때로는 나름대로 괜찮다 싶은 글 등 이래저래 많은 글들을 써왔고 종류도 다양(?)해서 축구, 음악, 기타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 때로는 일상의 소소한 일들까지, 열심히도 써왔다.

 한동안 이 일도 접어야 겠다. 내 자의로 접는 건 아니고 군대라는 곳이 내 발목을 그렇게 잡아버리더라. 뭐 야속하지만 어쩌겠나, 그저 난 이대로 물러나는 수 밖에.

 한동안 제 블로그에 와주셨던 여러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군대에서도 잊지 못할거에요.

 

2009년 2월 23일 월요일

모두 정말 미안해요.

 정확히 작년 2월 28일에 국내축구갤러리란 곳을 처음 들어왔다. 그당시 내가 활동하던 해외축구갤러리(-일명 해충갤)은 임수혁 사건때문에 한창 시끌시끌했고, 그 와중에 아이들이 싸놓은 똥을 좋다고 잘한다고 지껄이는 놈들때문에 이래저래 뜨게 되었다. 뭐 누가 나보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나와 함께 찌질대던 놈들이 생각보다 참 저질이구나 하는 마음에 그저 떠버렸다.
 
 그렇게 국내축구갤러리(이하 국축갤)에 발을 들여놓고부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것을 얻고, 깨달았다. 작게는 축구판의 동향과 전술서부터 크게는 평생을 같이 해도 좋을 사람을 만났다던가, 앞으로 내 인생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 갈 것인가 등. 이런건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때 마스터 해 두는것이 일반적인데 난 뭐 그리 할게 많았는지 재수할때 끝내버렸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다고, 그 와중에 내 성적은 바닥을 치고 난 날 믿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뒤통수를 한대씩 후려쳐댔다. 금전적인 관계든, 인간과의 신뢰의 문제든, 여하튼 모든 문제에서. 난 문제아였고 천하의난봉꾼이었으며..음, 여튼 개새끼였다. 무수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생을 살아오고 있으나 정작 난 신뢰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고 해야될까.

 난 그런 놈이었는데도 아직까지 날 좋아해주고 아껴주는 분들이 있다는건 정말 내 인생에서 두번다시 없을 행운일 것이다. 그 사람이 비록 나보다 어리든, 혹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든, 누구든지 내인생에서 부모님 이외에 날 믿어주고 신뢰해 줄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늘 든든하다.

2009년 2월 22일 일요일

망할놈의 친구

 정말 친한 친구가 한 놈 있다. 만난걸로만 치자면 1995년(무려 초등학교 1학년시절.)이었으니 거진 14년은 다 됐다. 강산이 한번 바뀌고 다시 바뀌는 동안 우리는 만나온 셈이다. 뭐, 서로 같은 동네에 살다가 중학교 1학년때 헤어지긴 했지만, 그 이후로도 못해도 1년에 한번씩은 만나고 서로 연락도 자주 하고 그런 사이었다.

 정말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맞는지, 요새 이놈과의 연락이 뜸해지고 있다. 올해는 그렇게 서로 보자고 보자고 머리에 총이라도 들이밀 기세로 난리를 쳐댔는데, 막상 연락은 없고..그러니까 대충 이런식이다.

 봄에 보자고 서로 문자를 했다. 조만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기다렸다. 연락이 없다. 또 연락을 했다. 여름되기 전엔 보자고 연락을 했다. 또 연락이 없다. 기다렸다. 연락을 했다. 이번엔 여름되면 보자고 했다. 기다렸다. 연락이 없다. 다시 연락을 했다.-

 이런식의 순환이 무한히도 반복되다보니 나도 슬슬 짜증이 치밀어오른다. 참 친한놈이고 좋은 놈이긴 한데 고놈이나 나나 아무래도 따로 몸이 떨어져 있다보니 서로 만나는 사람도 다르고 그래저래 하다보니 또 서로에게 연락을 자주 안하는건 좋은데, 말한건 좀 지켜야 될것 아닌가. 물론 서로에 대한 비중이 점차 줄어든다고 해도.

 모든것을 이해하고 싶은데 속좁게도 자꾸만 화가난다.

2009년 2월 19일 목요일

컴..컴퓨터가 안된다!

 그동안 파워에서 자꾸 문제를 보이던 망할놈의 컴퓨터가 드디어 사망하셨습니다. 그렇게 발로 차고 두들겨 패서 그런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여튼 안되는군요.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어제 있었던 일들과 단상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안되서 그냥 자버렸습니다.(덕택에 일찍 일어났죠.)

 

 참 컴퓨터를 그렇게 싫어했는데, 맨날 게임만 하면 꺼지고, 다운받다 꺼지고, 인터넷 하다가 꺼지고, 이래저래 맨날 꺼지기만 하던 컴퓨터였는데도 막상 생을 다하고 나니 허탈하네요. 정이 들어버린걸까요.

2009년 2월 18일 수요일

울트라스라...

 요새는 갤에 울트라스 떡밥이 나돌고 있다. 뭐 GS팀에 울트라스가 생겼고, 그거 신나게 까다가 보니 그 울트라스 본인들이 와서 갤에서 이래저래 떠들고 있고, 울트라스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최초의 울트라스 스컬도 신나게 까이고. 갑자기 대구 울트라스인 도미네이터도 까이고. 뭐 이래저래 갤 내에서 울트라스의 수난시대로 볼수도 있겠다.
 
 뭐 갤에선 도대체 왜 한국에서 울트라스가 나오냐고 하는데, 난 오히려 한국이니까 울트라스 문화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유럽과 남미의 서포팅을 따라하고 있고(최빈국중 하나인 라오스에서 인챠하고 인도애들도 울트라스를 가지고 통천돌리고 홍염깐다.)우리나라 역시 별반 다를게 없는지라, 그들의 서포팅 문화중 핵심인 울트라스라는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우스운 일일것이다. 그네들이 좋아하는 이탈리아만 해도 왠만한 울트라스들이 서포팅을 리딩하고 제일 열정적으로 뛰니까. 물론 작금에 그들이 보여주는 전체주의와 극우주의적 행동은 욕을 먹기에도 충분한 것들이 많긴 하지만. 근래 서유럽에서 퍼지는 전체주의가 울트라스를 통해서 퍼진다는 말도 있을정도로.

대표적인 것 하나.

 우리나라의 울트라스들이 이러한 사상적 배경에 혹해서 울트라스라는 개념을 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팀을 위해 좀 더 열정적으로 서포팅하고, 좀 더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고, 좀 더 강렬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울트라스란 개념을 선택했을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작금의 울트라스들이 이렇게도 욕을 먹는건 그들 나름의 선민의식과 그들이 있는대로 잡는 가오(?)때문이 아닐까 싶다. 꾸르바 코어에서 열정적으로 서포팅하면서, 너희들도 이렇게 해라, 혹은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으니 너희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곳은 우리를 위한 공간이다, 뭐 이런식의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거나, 홈페이지에 가면 무슨 전쟁나가기 전에 선전포고문이라도 작성하는것 같은, 그런?

 뭐, 축구를 단순히 축구로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 축구와 내팀에 모든것을 걸어버린 사람들의 차이 아닐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