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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일 일요일

버스와 관련된 단상

1. 밤에 수원역에서 약속이 있어서 성남에서 수원으로 바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모란시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는 술에 취했는지 뭐에 취했는지는 모르는 아저씨가 핏기없는 얼굴의 젊은이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 상태가 안좋으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웃으면서 넘어가려 했다. 뭐 좀 시간이 지나니 그 뒤에 어떤 아저씨가 줄인줄 알고 서있었다. 뭐 거기까진 좋았다. 근데 갑자기 상태가 안좋으신 아저씨가 마구 나무로 달려가더니 나무를 마구 껴안는 것이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라도 만난양. 그때서야 내 코에는 저 아저씨의 술냄새가 감지되었고, 난 저 아저씨가 취했다는 사실을 아주 뒤늦게 깨달았다. 근데 그 뒤에 서있던 아저씨는 뭐 남는게 있다고 그 자리에서 얼쩡거렸다. 왠지 이 아저씨가 새치기 할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듬과 동시에 버스가 왔고, 아니나 다를까. 그때까지 나무에게 열렬히 애정표현을 하던 아저씨는 언제 그랬냐는듯 잽싸게 버스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그 아저씨 뒤에서 어정쩡하게 있던 아저씨는 세상에서 두번다시는 보기 싫은 미소를 지으며(마치 왜 이래, 다 아는 사람들끼리..하는 표정? 여튼 역겨운 표정.)나와 내 앞에 청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 아저씨가 버스카드를 찍을때 아나 매너는 어디다 팔아먹고 왔나..하고 다 들리게 중얼거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 아저씨는 세상 모든것들을 다 얻은 표정으로 버스안에 앉아서 마냥 자더군.

 정말 나이 처먹고 공중도덕의 ㄱ 자도 모르는 사람들 보면 어렸을때 가정교육을 어찌 받았나 싶다. 뭐 나무에게 애정표현 하던 아저씨는 갑작스레 귀소본능이 발휘되 그랬다고 쳐도, 그 옆에서 정말 역겨운 표정으로 웃으며 새치기 하던 아저씨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렇게 나잇살 처먹고 새파랗게 어린놈의 새끼한테 그딴말 들어도 목적을 달성했으니 기분은 참 좋은가보다.

 2. 늦은 시간 약속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양재역에서 버스를 갈아탔다. 한 정거장쯤 지났을까, 마치 로맨스 그레이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을 지닌 할아버지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생김새가 정말 푸근한 산장 주인같이 생겨서 집에 돌아가는 길은 편하게 갈 수 있겠나 싶었는데, 앉자마자 버스 기사 새끼들은 싸가지가 없다느니 뭐가 어쨌다느니 계속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거다. 그러면서 자기 정해진 자리 안 지키고 자꾸 내 옆으로 영역확장을 하려고 탁탁 부딫히는데 나도 덩치가 있으니 그런게 싫은지라 나 역시 버팅겼다. 그 할아버지는 자꾸 혼자서 뭐라 중얼거리고 이상한 손짓을 하면서 헤헤 혼자 웃다가도 다시 쌍욕에 이상한 소리를 자꾸 해대고..그 와중에도 개도 아니고 영역 확장의 본능은 살아있는지 자꾸 내 옆을 툭툭 밀친다. 전화 제대로 받는거 보면 비정상은 아닌거 같은데, 술냄새도 안나고 오히려 좋은 스킨향이 나는걸로 봐서는 멀쩡한게 확실한데, 도대체 왜 그런걸까.

 이 세상에 정말 로맨스 그레이란 없는 것일까. 슬프다.

덧. 글을 쓰다가 귀찮아서 문자인지 뭔지 모를 것을 받지를 않았는데, 확인해보니 국제전화다.
망할.